장석범(65 법률)
“얼굴에서 힘을 빼야 해. 보는 사람에게 부담을 줄 필요는 없어야 하니까.” 강의 중에 하시던 은사님의 말씀이었다. 굳은 표정이 환영받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언제나 밝은 음성으로 열강을 하시던 신동욱(형법) 교수님의 표정에선 여유로움과 선율과도 같은 미소가 머물러 있었다. 평소에 표정이 어둡다는 말을 자주 듣던 나는 교수님의 말씀이 마치 나를 두고 하시는 것만 같이 느껴졌 다. 굳게 닫힌 문도 자주 두드리면 열린다니 두드리 는 연습이라도 해볼까? 라는 생각이 맴돌았지만, 실제로 실천하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유년시절, 나는 특이하게도 곧잘 노인들의 말상대가 되곤 했다. 그래서 애늙이란 별명으로 통했다. 또래와는 어울리지 않게 약간 조숙했던 모양이다. 나는 몸집이 작았고 약한 체질이었던 탓에 병원에 자주 드나들었다. 내가 자주 다니던 병원이 있었는데, 원장 선생님은 할아버지 연세쯤으로 나의 즐거운 말동무 상대이기도 하셨다. 한번은 소화불량으로 병원에 갔을 때였는데, 의사 선생님의 처방 내용은 매우 간단했다. 과식으로 소화가 안될 때는 한 끼를 굶으면 되고 끼니때마다 밥을 조금만 덜 먹으라는 거였다. 이상한 일이다는 생각은 했지만 그래도 나는 의사 선생님의 말씀을 우선 흉내라도 내보기로 했다.
우연의 일치였을까? 또 하나의 경험이 있다. 3년 가까이 전통무예를 배운 일이 있는데, 사범님께서는 몸에서 힘을 빼고 편한 자세를 가져야 한다는 충고를 여러 번 하셨다. 부상 예방과 새로운 차원의 기능 습득에 유리해지기 위해선 힘을 빼야만 한다고 하셨다. 쉽지 않은 과정이었지만, 도장에 다니기 시작한지 반년 가까이 될 무렵부터 바른 길로 들어섰 다는 평을 들었다. 열심히 수련을 했더니 마음보다 몸이 한 발 앞서 알아채고 정상의 길로 안내한 모양이다.
다음의 순서는 어두운 표정의 문제였다. 하루는 거울을 앞에 놓고 얼굴을 살펴보았다. 세밀하게 방향과 각도를 바꿔가며 얼굴 근육을 크게 움직였다가 다른 포즈를 취해보기도 하다가 무심결에 퍽하고 웃고 말았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에 드러난 거울 속 내 모습은 평안 그 자체였다. 근심이나 걱정같은 것이 끼어들 여백이 없었다. 여기에서 미소의 의미를 새롭게 만났다. 그 옛날 의사 선생님의 명 처방, 도장에서의 권유 등은 힘을 빼라고 하신 스승의 말씀 속에 포함된 하나의 줄기란 사실을 알았다.
나는 하루 세끼의 식사를 한다. 일주일이면 스물 한끼가 된다. 그런데 나이가 많아지면서 소화에 부담을 느끼기 시작하자 옛 생각이 떠올랐다. 현재 일주일에 한끼를 줄이기로 결정하고 체화시켜나가고 있다. 21에서 1을 덜어내니 무한대가 되었다. 조금 줄이고 나서 다시 보니 거기에는 건강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