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나는 편지를 쓴다. 이제는 습관이며 생활의 일부가 되었기에 하루도 거를 수 없는 필수의 과정으로 자 리 잡았다. 휴대전화의 다양한 기능에 밀려 편지 인구가 급감한 지는 오래다. 그도 그럴 것이 첨단기기의 출현으로 비용이나 시간을 크게 줄이면서 정보를 주고 받을 수 있게 된 것은 물론, 기다리는 수고도 없을뿐더러 ‘행여나’ 하는 염려의 징후마저 필요 없는 완벽의 세계가 아닌가. 내가 편지를 쓰는 데는 특별한 목적의식이나 이해 관계가 개입되어있지 않다. 그냥 내가 즐기는 분야, 바로 이것이 전부일 뿐이다. 좋아해서 즐기는 것, 이 유라면 그게 이유이고 핑계라면 또 그것이 핑계이다.
편지쓰기가 유일한 취미 활동으로 자리매김을 하고 나서 보니 내가 쓰는 편지에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만들어진 규칙 같은 것이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내 편지는 정해진 수신인이 아닌 그 어떤 사람이 먼저 읽어도 관계가 없는데, 이는 전혀 읽지 않아도 되고, 답신을 요하지 않는다는 뜻과 일맥상통한 다. 평균 하루 한 통의 편지가 발송되며, 모두 한정된 수신인들이다. 그리고 그들은 이미 내 의중을 오래전부터 알고 있어서 그런지 내가 보내는 편지로 부담을 느낀다거나 스트레스의 빌미가 되지는 않는 눈치여서 다행으로 여긴다. 한 가지 더 특이한 점은 따로 비밀스러운 내용을 넣지 않기에 개방되어도 무관하며, 누구에게나 불편할 이유는 없다는 것이다.
주변의 자연환경이며 갖가지 일상이 소재이기 때문에 편지 내용이 대체로 쉽고 소소하다. 편지를 보내고 나면 한 가지의 커다란 숙제를 푼 것 같은 후련한 마음이 된다. 또한 조금 더 생각할 기회를 던져주기도 한다. 그래서 더러 고심하던 문제 해결의 해답이 된 적도 있으며, 한번쯤은 수신인이 편하게 미소 지을 수 있는 내용이 되길 희망하기도 한다. 편지 발송 후 수신까지는 이삼일 정도 걸리는데 그 기간이 내게는 또 한 차례의 새로운 행복을 빚어내는 기회이다. 이 편지를 받아든 이에게 어떤 현상이 일어날까? 얼굴의 표정은? 우울한 처지였다면 다소 위안의 요소가 되지 않을까? 주름살 하나가 지워지는 효과는? 등의 밉지 않은 욕심을 부릴수 있는 자유가 부여되니, 이 얼마나 행복한 나만의 특권인가.
스피드로 점철된 화려한 시대에 살면서, 그것도 전력질주가 당연시되는 현대인을 향해 한 통의 육필 편지가 가지는 의미는 무엇일까? 편지를 쓰고 나면 잠시 찾아드는 평온 그것이 나에게는 명상이거나 기도라고 생각한다. 좋은 얼굴 떠올리며 편지를 쓰다 보면 마음이 편해진다. 특별한 목적 없이 먼저 써보는 한 통의 편지의 가치. 비록 상대가 좀 서먹한 사이라도, 어쩌면 잠긴 문의 열쇠가 될지 모를 일이다. 손편지 쓰는 인구가 늘어간다면 사회 곳곳의 요소마다 밝은 빛이 들 것이란 확신이 든다. 나는 오늘도 편지를 쓴다. 미소가 피어남을 알기에, 어깨춤이 일어날 것을 믿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