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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윤재환 의사 ‘항일운동 정신’ 80여년만에 부활

조카 윤용택 성대총동창회장 40여년간
백부의 항일행적 끈질긴 추적 공적 인정
지난 광복절에 건국공로 대통령 표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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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윤재환 의사

 

 

독립운동가들은 민족의 표상이다. 그들의 헌신은 조선의 독립이 외세에 의존한 결과가 아님을 증명하는 동시에 민족의 자긍심을 높이는 결정적 증거다. 하지만 독립 유공자들은 스스로 말하지 않는다. 공명심을 앞세우지 않는 그들이 자신의 공적을 스스로 기록해 놓았을리 만무하다. 그래서 선조들의 독립유공을 객관성 가진 각종 자료로 입증하는 일은 풀밭에서 바늘 찾기만큼 어렵다. 하지만 찾고 밝히는 건 후손들의 몫이다. 목적의식이 없다면 시작하기조차 힘들다. 그 어려운 작업을 윤용택 성대총동창회장이 해냈다. 동문회원의 차원을 떠나 전 국민적 귀감이 되는 일이기에 지면을 빌어 소개한다.  -편집자-

 

 

고 윤재환 의사 독립운동가 서훈

 

유학생으로 일본에서 항일 운동을 벌였던 고 윤재환 의사가 2021년 8월 15일(일) 광복절에 보훈처로부터 건국공로 대통령 표창을 받아 독립유공자로 공식 인정받았다. 지난 1938년 약관 20세의 나이로 타개한지 82년만이다. 윤 의사는 1933년 공주영명고등보통학교 재학 당시 신사참배 거부로 퇴교 조치당하자 개성송도고등보통학교 4학년으로 편입해 항일 운동을 이어나갔다. 1934년 4월 22일 동대문경찰서 고등계에 체포돼 모진 고문을 겪다가 6월 12일 기소유예로 석방되었다. 일본 경찰의 밀착 감시로 국내 활동이 어려워지자 윤 의사는 1936년 일본으로 건너가 고베에서 ‘조선인 학우회’ 서기로 활동했고 이듬해에는 일본 호세이 대학에 진학했다. 그에게 학업은 항일학생운동을 위한 일이었다. 윤 의사는 1938년 터진 ‘재 동경유학생 독립운동 사건’으로 현지에서 또다시 체포됐다. 윤 의사의 계속된 항일 운동에 일본 경찰의 모진 고문이 계속됐고 그는 결국 10월 10일 타계했다.

 

 

백부님 서훈에 부쳐

 

저의 백부(伯父)인 윤재환(尹載煥) 의사께서 2021년 8월 15일 광복절에 독립유공자로 건국공로 대통령 표창을 수상하게 되었습니다. 장조카인 저로서는 무한한 영광이며 그동안 도와주신 많은 분들께 머리 숙여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백부님께서는 항일독립운동을 하시다가 일본 경찰의 고문으로 1938년 약관 20세 나이에 일본 적십자병원에서 돌아가셨지만, 그 공적을 인정받지 못하고 초야에 묻혀 계셨습니다. 80여 년이 지난 올해 국가에서 비로소 공적을 인정받아 명예를 회복하시어 저를 포함한 후손들은 조상님께 부끄러움을 면할 수 있게 됐습니다.
저는 40년 전부터 백부님의 발자취를 따라 증언 및 자료를 수집해왔지만 개인으로서는 정보수집에 한계를 절실히 느끼며 실의에 빠져있었습니다. 그 와중에 평생을 독립운동 연구에 헌신하신 인천대학교 독립운동사연구소 소장인 이태룡 박사의 도움으로 놀랄만한 자료들을 확보해 백부님의 항일공적을 책자로 발간하고 KBS 뉴스 출연(‘21.3.7일 자) 등을 통해 백부님의 죽음이 국가를 위한 결과였음을 밝힐 수 있었습니다.
뿐만아니라 그간 묻혀있던 인천 송도고등보통학교 출신 100여 분의 항일공적도 함께 발굴하는 계기가 됐고 인천이 명실상부 항일운동 본산지였음을 세상에 알릴 수 있었습니다. 이분들의 희생과 항일정신이 결코 헛된 죽음이 아니었음을 밝힘으로써 선조들의 나라 사랑하는 민족정신이 후손들에게 계승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백부인 윤재환 의사는 일제의 끊임없는 압박에도 학업의 끈을 놓지 않은 분이었습니다. 아마도 수학의 목적과 함께 어린 나이에 학생 신분이 항일 저항에 숙명적이라고 판단하셨으리라 생각됩니다. 많은 학교를 전전하고 도일까지 하며 조선 독립운동에 몸 바친 그 앳된 청소년의 열정을 저는 지금도 이해는커녕 짐작조차 하지 못하겠습니다.
아직도 순국선열과 애국지사의 공훈이 제대로 인정되지 못한 선조분들과 그로 인해 고통받고 계시는 유족들이 많습니다. 이분들의 명예회복과 숭고한 희생정신을 기리기 위해 국가 보훈처의 원활한 행정적 절차가 촉구되길 읍소합니다. 일일이 열거하지 못하였지만 그간 많은 성원을 보내주시고 도와주신 분들께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장조카 윤 용 택 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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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희(58 법률) 동문, 멈추지 않는 모교사랑 이태희(58 법률) 현재 총동창회와 모교에서는 재학생을 지원하기 위한 다양한 성격의 장학 캠페인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성균노벨상 기금, 글로벌 성균장학재단, 성균글로벌센터건립기금, 후배사랑 학식지원기금, VISION2010 발전기금 등의 기부금은 많은 동문들의 성원으로 꾸준히 유지되고 있으며, 재학생들이 학업을 영위하는 데 있어 든든한 빛과 소금이 되어주고 있다. 꾸준히 생명력을 가지고 장학 사업이 이어져 올 수 있었던 배경에는 십시일반 적은 금액이나마 한결같이 관심을 보내고 있는 동문들이 다수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 가운데 이태희(58 법률) 동문이 있다. 이태희 동문은 공무원 연금 생활하면서 고액 기부를 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교에 대한 사랑을 이어나가고 있다. 매달 10만 원씩 재학생들의 학식지원과 장학금을 약정했으며 그 외 글로벌센터건립기금, 사랑의 대물림 장학기금 등에도 계속해서 기부하고 있다. 오랜 기간 차곡차곡 기부해온 이 동문의 기부금은 총 1,200만 원에 이른다. 금액의 문제를 떠나 참여한다는 의식에 중점을 두고, 많은 동문들의 관심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질 때 동문사회의 화합과 모교발전을 위한 장학사업은 더욱 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