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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성균관과 성균관대 이어진 '지성의 역사'

600년 ‘성균관 적통’… 위대한 유산 계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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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교 성균관대가 각종 국제기관의 대학 평가에서 수년째 뛰어난 성적을 얻으면서 대내외 위상이 급상승하고 있다. 취업률과 다양한 국가 고시 합격률을 통해 국내 최고 수준의 학업 능력은 이미 증명됐다. 성균관대학교는 600년 지성의 역사다. 이렇게 오랜 전통교육기관이 현대에 발전된 모습으로 자리 잡은 사례는 전 세계적으로 드물다. 이제 위상에 상응하는 자부심을 가져야 할 때다. 성균관대는 조선 성균관의 모든 것을 계승하고 있다. 성균인들의 자부심을 위해 그 근거를 짚어본다. 본 기사는 고 이우성 교수(한문학과)의 글(건학 600주년의 재인식)을 차용해 재구성했음을 알린다.


 

 

 

성균관대학교가 건학시점을 1398년 조선 성균관 설립 시기로 잡는데 의문을 제기하는 이들이 없지 않다. 가장 단순하고 대표적인 지적은 국립이 아니라는 점이다. 하지만 사립이라는 점만 제외하면 성균관대는 성균관의 적통 그 자체다. 국립시절 성균관의 모든 것을 그대로 계승했기 때문이다.


성균관은 1398년 조선 태조가 국립대학으로 설립했다. 이후 1895년 고종 황제가 3년제 근대대학으로 개편했지만 1911년 일제에 의해 학문 수학의 기능이 없는 경학원으로 개편된다. 이후 명륜전문학원 등으로 개칭을 거듭하며 성균관의 교명이 사라질 위기 속에서 광복을 맞이했다.
이 혼란스러운 시점에 독립운동가 김창숙 선생이 1946년 전국의 유립 세력을 모아 성균관대학 설립을 위한 재단법인을 발족시키면서 성균관의 명맥을 살려냈다. 그렇지않았다면 성균관이라는 명칭과 그 이념을 온전히 계승한 교육기관은 역사 속으로 사라져버렸을 가능성이 높다. 결국 역사를 되짚어보면 국립이 아닌 사립이란 점은 결격사유가 아니라 오히려 명맥을 이어준 유일한 해결책으로 칭송받아야 할 부분인 셈이다.

 

 

우선 교명과 캠퍼스를 그대로 물려받았다. 성균관이라는 본 이름 밑에 대학교라는 말을 붙여 근대식 호칭으로 변경했지만, 알맹이는 바로 '성균관'이다. 오늘날 수원에도 캠퍼스가 있으나 본거지를 옮긴 것이 아니라 명륜동 캠퍼스의 확대 개념이다. 재정기반도 그대로다. 왕조시대의 '성균학전'을 기본재산으로 발족한 성균관은 그 이후 각도 향교재단의 일부를 흡수하여 재단법인을 발족시켰다. 개인 독지가의 기부를 받아 재단을 확충시키기도 했지만 역시 근본을 따져보면 왕조시대의 학전이 기반이다.


더 중요한 것은 건학이념 역시 그대로 물려받아 이어오고 있다는 점이다. 조선왕조의 건국이념은 유교다. 오늘날의 유교는 과거와 같이 국교는 아니지만 동양의 전통사상, 전통문화의 정수를 체득한 바탕 위에 현대적 인간교육, 과학교육을 실시하는 성균관대의 기본이념은 곧 유교 정신이다.
대학의 캠퍼스는 사정에 따라 이동될 수 있으며 재정기반이라는 것도 변화가 생길 수 있다. 대학의 역사를 말할 때 캠퍼스가 옮겨지고 재정기반이 변했다고 대학이 달라졌다고 하지 않는다. 반대로 캠퍼스와 재정기반은 그대로라고 하더라도 건학이념과 교명이 완전히 바뀌게 되면 종래의 것과 단절된 다른 대학이 된다. 즉 건학이념과 교명이 그 연속성을 보증한다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캠퍼스, 건학이념, 재정기반, 교명 등이 모두 조선시대의 성균관을 그대로 물려받았다는 사실은 이미 공지된 사실이다. 현 캠퍼스가 처음 건립된 1398년을 성균관대의 건학년대로 소급 계산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비록 경영 주체가 국립에서 사립으로 전환되었다고 하더라도 조선 성균관이 오늘날 성균관대로 계승됐다는 점을 모두 인정한다. 심지어 정부도 성균관대 600주년 기념우표를 발행했다는 사실은 이 모든 사실을 여실히 입증하고 있다. 당시 발행된 우표와 함께 실린 연혁을 살펴보면 더 이상의 논란이 불필요하다.


중국 북경의 국자감과 일본 동경의 성균관은 모두 근대대학으로 발전하지 못하고 중세적 유물로 화석화 되어버렸다. 동양 삼국 가운데 오직 성균관대만이 중세대학의 캠퍼스 속 근대대학으로 발전했고 현대교육의 첨단을 지향하며 국내외의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건학 600년을 넘어 700년 1000년까지 더욱 힘차게 전진해야 할 이유로 이보다 원대한 것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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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_북미주연합동문회장 취임 특별 인터뷰_ 전상훈 회장 성균관대학교 체육과 1회 입학, 모교 핸드볼 대표 선수로 맹활약을 떨치며 모교의 위상을 드높였던 전상훈 동문이 지난 7월 북미주연합동문회 회장으로 취임했다. 성균관대학교에서 얻은 ‘배움만이 보배 아닌’ 교훈을 가슴깊이 간직하고 살았다는 전 회장은 먼 타국 땅에서 사는 동안 그 교훈을 성실하게 실천하며 살아왔다고 한다. 모교의 보배로 성공, 북미주연합동문회를 새로이 이끌게 된 전 회장을 총동창회 사무실에서 직접 만나 취임 소감을 들어보았다. 성대동창회보(이하 회보)_ 북미주연합동문회가 창립 된지 20년째 되는 해에 회장으로 취임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취임 소감 부탁드립니다. 전상훈 북미주연합동문회장(이하 전 회장)_ 벌써 20년이 되었다니 저 또한 감회가 남다릅니다. 창립 당시부터 함께 했던 저로서는 그때의 생생한 느낌이 지금도 살아있습니다. 그때를 회상해보면 먼저 앞서 동문회를 이끄셨던 선배님들이 보고 싶고, 또 그립습니다. 그때의 기억을 원동력 삼아 나날이 발전하고 있는 북미주연합동문회의 위상에 걸 맞는 연합동문회의 회장직으로서 소임을 다할 것이며, 앞선 회장님들의 성과에 누가되지 않고 더욱 발전된 조직이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회장으로 선임해준